50년의 이야기

상호신용금고의
설립과 정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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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2년 12월 21일 매일경제 기사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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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 2월 23일 전국상호신용금고협회는 농협중앙회 강당에서 제1기 정기총회 를 열고 부실 금고를 조속히 정비, 수신업무를 인가해줄 것을 당국에 건의하기로 의결

상호신용금고의 설립

1972년 8월 2일 무질서하게 난립한 사설 무진과 서민금고를 정비하고, 영세규모의 사채를 건전한 제도금융기관으로 흡수시켜 중소기업 및 서민의 금융편의에 이바지하기 위해 상호신용금고를 육성할 것을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1972년 8월 2일 법률 제2333호로 공포된 ‘상호신용금고법’은 국민은행은 물론 중소기업은행, 지방은행, 시중 은행 등 다수의 금융기관에서 자금의 부족과 이용자의 담보력 부족 등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소외되어 있던 영세상공인과 일반 서민에게 제도권 금융기관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제도금융기관으로 정착하다

1975년 7월 25일 상호신용금고법 개정을 계기로 1976년부터 경영실적이 우수하고 자산의 건전성이 확보된 금고에 대한 선별 육성에 나섰다. 경영상태가 양호한 금고에 대해서는 신용부금 업무를 허용하고 운영자금을 지원하는 등 육성책을 펴는 한편 경영이 부실한 금고에 대해서는 지도를 강화했다.

대자본 및 전문경영인의 금고업 진출

업무신장 속도가 빠르고 자본이익률이 높은 금고의 가치를 알아본 대기업들이 경쟁적으로 금융기관 인수에 나서며 건설사 등 대자본의 금고업 진출이 가속화 되었다. 대기업들의 금고업의 참여는 한편으로는 금고업의 대외적 공신력을 높이고 업계 내부적으로는 자본의 대형화와 우수한 전문 경영인의 유입을 유도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수신의 급격한 성장

신용금고업계는 서민금융의 특징인 지역밀착주의, 신용확충주의, 신속주의금융을 장점으로 빠른 성장을 이룩했다.